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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유 한팩으로 당신이 무사한지 묻습니다 -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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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이웃·친구를 만나고 헤어질 때 “안부 전해 주세요!” 라는 말을 한다. 상대는 “알았어요, 안부 잘 전할게요.” 라고 답한다. 의례적이지만, 서로에게 안부를 묻고 걱정할 때 마음이 편해지고 우정을 느낀다. ‘안부’가 무엇이기에, 우리는 안부를 통해 따뜻한 마음을 가질까. 사전에는 안부(安否)가 다음과 같이 적혀있다. “어떤 사람이 편안하게 잘 지내고 있는지 그렇지 아니한지에 대한 소식. 또는 인사로 그것을 전하거나 묻는 일.”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이다. 그런데 오늘은 생소한 네 글자 ‘우유 안부’라는 말을 발견한다. 한 할아버지 집 문 앞에는 보라색 보랭 가방이 걸려 있다. 우유 주머니다. 가방 앞에는 이런 문구가 적혀 있다. ‘다른 분께서 우유를 가져가시면 어르신의 안부를 확인할 수 없습니다.’ 매일 새벽, 우유 배달원은 이 가방에 우유를 넣으며 할아버지의 밤새 안녕을 묻는다. 보랭 가방이 비어 있으면, 이날 하루 무탈하게 우유를 꺼내 드셨다는 뜻이다. 우유가 그대로 남아 있으면, 배달원은 즉시 주민센터 등에 알리고, 어르신 근황이나 상태를 확인한다. 통상 혼자 살던 사람이 가족·이웃·친구 간 왕래가 거의 없는 상태에서, 사망하고 사흘 이상 방치되는 것을 ‘고독사(孤獨死)’라고 한다. ‘시신을 인수할 가족이나 지인이 없는 죽음’을 뜻하는 무연고사다. 우유 안부가 죽음까지 막을 순 없지만, 죽음이 3일 이상 방치되는 고독사를 막고 있다. ‘우유 안부’는 '어르신의 안부를 묻는 우유 배달'이라는 뜻이다. 서울의 한 목사님이 지인의 후원을 받아 홀로 사는 노인들에게 우유를 보내면서 시작했다. 고독사가 사회문제로 크게 떠오르던 시점이었다. 지금은 ‘우유 안부’를 위한 사단법인까지 만들어져 홀로 사는 노인 수천 명에게 매일 180㎖ 우유 한 팩을 보내고 있다. 어르신의 영양을 챙기고, 챙겨주는 사람이 있다는 정서적 지지를 보내며, 고독사를 막기 위한 일거양득이다. ‘영양 보충’ 목적이던 우유 배달에 ‘고독사 방지’라는 임무가 하나 더 붙은 셈이다.
‘우유 안부’에 대해 알고 보니, 그렇게 비정하게 보였던 우리 사회가 그나마 유지하고 지탱하는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수많은 범죄가 일어나지만, 이런 범죄를 막고 상쇄하려는 사람들의 따뜻한 마음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 감사한 마음 그지없다. 어느 누군가의 훈훈한 사랑의 시작이 우리 주변에 따뜻한 온기로 감돌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는 순간이었다. 인간은 야누스의 얼굴을 가지고 있다, 라는 말이 있다. 대비되는 선악으로 가득한 덩어리다. 이 모순 덩어리가 두 개의 영을 갖고 태어난다. 오른편에 수호천사, 왼편에 악마. 그리고 사람은 이 지상에 태어난 이상, 인생이라는 편력을 거쳐야 하는 지상의 순례자다. 그러나 천사와 악마에게는 그런 인생의 편력이 없다. 따라서 그 어떤 천사도 악마도 인간에게 결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없다. 그 선택은 오직 인간 스스로의 자유의지에 달려있다. 그러나 악마는 인간을 유혹하는 권력, 재물, 명예라는 강력한 미끼를 갖고 있다. 그래서 항시 사람을 옳지 않은 길로 유혹한다. 그에 반해 천사의 무기는 미약하다. 오직 인간의 마음속에서 ‘살아 있는 소리’로만 존재한다. 그것이 사람 속에 깃들어 있는 수호천사의 목소리, 양심의 소리다. 그리고 눈물은 천사의 묘약, 천사의 보석이다. 우리가 절망하고 있을 때 눈물을 흘릴 수 있다면 우리는 천사로부터 위로를 받고 마침내 절망에서 벗어날 수 있다. 어쩌면 ‘우유 안부’는 우리를 유혹하는 악마의 손길에서도, 천사의 목소리가 우리의 마음에 경종을 울린 것인지도 모른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사회의 냉대와 질시 속에서 형언할 수 없는 죽음에 이르고 있는가. 지난해 부산의 한 주택에서는 1년 전 숨진 것으로 추정되는 60대 남성이 백골 상태로 발견되기도 했다. 1년간 아무도 노인을 찾지도 않았고, 방문도 하지 않았다는 말이다. 이러한 죽음이 도처에 널려있다. 통계에 의하면, 국내 무연고 사망자는 계속 늘어나 년 3,000명에 이른다고 한다. 우유 안부의 역할이 더더욱 중요하고, 고독사하는 어르신 사라질 때까지 ‘우유 안부’를 전해야 할 것이다. 어쩜 ‘우유 안부’는 우리 모두의 미래에 대한 걱정의 한 단편일 수도 있다. 지금 이 시간에 나의 ‘우유 안부’에 버금가는 안부를 누구에게 전할 것인가를 곰곰이 고심한다. 성녀 테레사 수녀의 말처럼 이 세상의 삶이란 ‘낯선 여인숙에서의 하룻밤’에 불과하다. 타향에서의 짧은 귀양살이인 우리의 삶을 다시 돌아보게 한다. 글 최백용 ***이 글은 순천사랑어린학교 김민해 목사가 펴내는 <월간 풍경소리>에 실린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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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ugust 17, 2020 at 04:28P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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